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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체험수기 대상, 우수상, 장려상

  • leeshseongji2
  • 2025년 5월 27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5년 6월 25일


고은하 세실리아 수녀 _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답동성당 소임
고은하 세실리아 수녀 _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답동성당 소임

2025체험수기 '대상' : 하느님 첫 사랑의 하늘 아래서

버스에서 내려 발이 땅에 닫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폭우에 신발과 옷끝이 젖기 시작한다. 드디어 이승훈 베드로 성지에 갈 수 있다며 손꼽아 기다려온 설레임이 우산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인천교구 순교자 현양대회”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다. 뻥뚫린 하늘을 향해 행사장의 중앙 좌석들은 일찌감치 텅빈 마음으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고, 건물 기둥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든 사람들만이 장단없는 아우성으로 웅성거린다. 굵은 비는 짙은 구름을 내세워 의기양양 그칠 기색이 없다.

행사가 “맑음” 속에서만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지만, ‘맑음’보단 ‘폭우’가 순교자의 삶을 더 잘 표현해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투덜거릴 수는 없으나 못내 아쉬운 마음 한 자락 너머로 주교님께서 사람들 틈을 지나가시는 것이 보인다. 우산을 쓴 어른의 마음은 오죽하실까... 마음이 침묵이 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주기도가 장대비를 벗 삼아 방울방울 노래가 되어 하늘에 울려퍼지며 행사는 시작되었다. 소리만큼은 빗소리에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우리들의 순교 의지와 결의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우렁찬 목소리가 하나되어 더 구슬피 묵주기도를 외쳐 부른다. 매괴의 고리가 한올한올 엮여 다발이 되고 하늘에 올려질 때마다, 지치지 않는 기도의 노랫소리에 먹구름이 잠시 넋을 잃은 걸까. 하늘의 자리를 뜨지 않은 먹구름이건만,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묵주기도의 끝자락에 비가 멎는 것이 아닌가. 아~~ 미사가 시작되고, 주교님께서 사제단과 입당하시고, 그리고... “여러분의 묵주기도에 비가 멎었습니다.”라는 주교님의 첫 말씀이 울려 퍼지자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터져 나오는 기쁨의 함성과 박수를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로 올려드렸다.

 

그 하늘이 폭염주의보가 된 어느 오후, 복잡한 마음을 달래러 무작정 나선 길은 다시 이승훈 베드로 성지였다. 인적 드문 길 위에 살인 더위라는 죄명답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각오라도 하라는 듯 땀과 끈적임으로 나를 무장시키고, 묘를 향해 올라가는 십자가의 길은 만만치 않은 인생길을 다시금 하나하나 새겨준다. 각 처마다 작가의 섬세한 손길로 표현된 예수님의 수난이 더 애잔하게 마음에 파고드는 시간.

도착한 묘에는 배교와 복교의 과정에서 벗들과 함께 참수로 생을 마감한 이승훈 베드로의 넋이 진토되어 있었다. 그는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아파하고 힘들었을까.

‘헛 살았구나’ 싶은 절망이 마음을 짓누르는 날, 복교로 참수의 길을 선택했던 이승훈 베드로의 용기가, 십자가의 길에서 수없이 넘어졌을 주님께서 신음 속에 다시 일어서시는 소리가, 오늘 나를 울리며 다시 걷게 하신다.

 

순교자 현양대회 날, 장대비가 미사 시작과 함께 그쳤을 때 내가 감동에 차 말했었다.

“하느님께서는 인천교구를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비가 멈추다니...”

“하느님께서 인천교구를 많이 사랑하셨다면 비가 오지 않았어야죠.”

단호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뒤통수를 칠 때,

나는 소리없이 두 손을 모으며 내 마음을 띄웠다.

“그랬다면...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감동과 기쁨의 환호성은 미지근했을 거예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듯, 한국교회의 선구자로 뽑아 교회의 모퉁이 돌로 세우시며 첫 세례를 베푸신 이숭훈 베드로. 우리 수도회의 한국 첫걸음이 시작된 곳. 인천교구는 하느님의 첫사랑으로 빛나고 있다. 이곳에서 소임을 할 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감동인지.

참수 날의 하늘이 천상의 문이 되어 열리고 오늘의 하늘이 되어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한결같이 흐르고 흘러 눈부시게 빛나 오늘에 이른 하늘이 순교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 그같은 하늘 아래로 나를 부르신 하느님. 인생의 장맛비도 폭염도 맛깔스럽게 지나갈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소서. 아멘.




2025체험수기 '우수상' : 月洛在天水上池盡(월락재천 수상지진)

달은 비록 지더라도 하늘에 남아 있듯이 내 신앙은 천주 안에 그대로 남아있고,

물이 솟구치더라도 연못에서 다하는 것 같이 내 신앙은 결국 천주 안에서 다한다. 

이승훈베드로 성지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문구이다.

순교 신앙을 체험하는 성지로, 초대교회 신앙공동체를 이끈 한국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의 순교정신을 칭송하고 표현하는 문구로 이해되었다.

2024년 9월 12일, 드디어 이승훈 베드로 성지 현양미사가 진행되었다.

꼭 참석하리라 계획했었던 일정이었지만 참석할 수 없었다

수개월 전 예약된 병원 진료일로, 5년 전 위암 수술을 한 남편이 병원에 위내시경이 예약되어 새벽부터 보호자로 동반해야 하는 일정과 맞물려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현양미사 전날 홀로 성지를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려치는 빗속에서 많은 봉사자들이 의자를 셋팅 중 난감해하는 타이밍에 나는 도착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경당을 찾아 잠시 묵상하고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하고 짧은 일정을 마감했었다.

어제 나는 홀로 성지를 찾았다.

그야말로 나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들이었다.

자그마한 경당에 들어가 등받이가 낮은 정갈한 나무 걸상과 돌로 마련된 웅장한 제대와의 묘한 하모니 속에 기도의 벽, 추모의 벽에 새겨진 이름들 속에서 남편의 이름을 찾아본다. 쉽지 않다.

기도와 묵상의 시간들을 가져보았다.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성지와의 인연을 떠올린다.

미사 중 묘지 역사공원화 소식을 듣게 되었고 후원자가 되었다.

기도의 벽에 남편을 올리며 주님께 의탁하고 성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더욱 나에게 의미 있는 성지가 되었다.

그때는 사랑하는 남편이 위암 수술을 하고 항암을 마친 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도의 벽 후원자로 매달 받는 미사 문자.

남편을 위한 미사가 진행된다는 한통의 문자가 나에게는 희망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고, 감사가 되었고 마치 주님 안에 안거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승훈 베드로 성지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마치 남편의 5년 동안의 암 완치 기간을 동행했다고나 할까.

열심히 살아내던 남편에게 닥친 암 선고, 무서웠다.

우리는 누구나 암 선고와 함께 이별을 떠올리게 된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고 수술 후 8번의 항암 중에도 일상을 보냈고 그 이후에도 감사한 시간들이다.

벌써 5년이 훌쩍 넘은 감사한 시간이다.

아직도 이승훈 베드로 경당 벽에 많이 비어서 주인을 기다리는 추모의 벽에 시부모님을 올리고, 부모님 기억할 기념일에 우리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성지가 되도록 계획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올리며 경당에서 나왔다.

 

인천과 부천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성지라서 레지오 단원들과 위령성월에 여러차례  묘지를 방문하고 십자가의 길에 단원들의 목소리를 흩뿌렸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예전에는 좋은 위치임에도 입구에 혼재한 비닐하우스 화원들, 예수님 고난을 함께 하듯 가파른 십자가의 길, 낮에 혼자 가기에는 조금은 으슥한 한국가톨릭교회의 최초 영세자와 가족의 묘원 앞을 수시로 지나는 때면, 괜히 죄송한 마음까지 들 때도 있었다.

새로 조성된 성지.

홀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데크로 새로 단장한 아름드리 숲속의 길.

숨이 가쁠 때는 손잡이를 슬쩍 잡아본다.

늘 그 자리, 내 곁에 계시는 주님처럼.

항상 변하는 건 ‘나’였음을 고백하며….

남편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나는 감사하게 받았다.

이제 우리집 거실 커튼을 들치면 바로 보이는 우리 본당의 십자가를 보며 울면서 남편을 위해 기도하던 숱한 시간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남편의 건강관리를 위해 공부하다가 평생 전업주부가 일을 갖게 되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이제 나에게 오는 경제적인 수확은 주님의 이름을 빛내는 곳에 쓰여지기를 소망하는 기쁜 시간들의 연속이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주님 안에서 이뤄지기를 매일 매일 기도한다.

 

月洛在天水上池盡(월락재천 수상지진)

 



2025체험수기 '장려상' : 반석의 신비

몇 년 전, 큰딸 가족과 베이징 여행 중의 일이다. 사위가 물어왔다. “혹시 가시고 싶은 곳 있으세요?” “있긴하지, 근데 아직 있을까 몰라.” “어디신데요?” “북당이라고, 1783년 이승훈이란 분이 한국 최초로 영세받은 곳이거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아직 있어요 어머님.” 내 귀를 의심했다. ‘한국천주교의 산실’, 역사 깊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되다니, 사는 게 참 신비다. 예상치 못한 은총에 감사하며 성당에 도착했다. 시스쿠성당(북당)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성당이다.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장엄한 외관, 거룩한 내부는 화려하고 규칙적인 아치 천장이 압도적이다. 천상빛이 감도는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놀랍게도 조선의 사신과 역사화도 그려져 있었다. “주춧돌이 되라”고 베드로란 이름으로 첫영세를 주신 그라몽신부님, 한국의 반석을 선택한 명민한 지혜는 자생교회 창립을 위한 하느님의 치밀한 구원기획이자, 사랑이요, 섭리요, 신앙의 신비였음을, 북당에서 깊이 깨닫고 돌아왔다.

 

코로나가 신앙을 박해하자 성당의 문들은 굳게 잠겼고 구원의 샘도 말라 갔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당신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애절한 내 목소리를 들으신 주님은, 빈들로 꾀어내어 성지순례하라고 속살거렸다. 21년 시월, 북당에서 받은 은총이 보름달처럼 떠올라, 이승훈 선조의 얼을 찾아 반주골로 향했다. 그 길은 으슥하고 무서웠다. 괜히 왔나, 돌아갈까, 유혹이 훅 들어왔다. 속내를 아신 성령은 “두려워 하지마라, 견디어라, 머물러라.” 말씀하시며, 친절히 동행해 주셨다. 반석의 묘는 초라했다. 주님의 섭리로, 서울 반석방에서 태어나, 숙명적으로 한국천주교회의 반석이 되신, 존귀하신 창립주역을 이렇게 홀대하다니, 씁쓸하고 속상해서 위로가 절로 나왔다. “언젠가 이 성지가 잘 조성되어, 신앙의 후손들이 당신의 업적과 영성을 기리며 현양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희소식이 들려왔다.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의 축복식과 현양미사가 9월 12일에 있었다는 뉴스다. ‘초대장’ 같은 메시지다. 뿌듯한 기쁨과 설레임을 안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기념관은 단아했다. 감사미사 예물을 바치고 후원도 신청했다. 강론을 들으면서 첫 순례의 오해는 풀렸다. 그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서 성지 조성이 어려웠던 것이다. 인천교구와 인천광역시가 합작해서 숙원사업을 이룬 것은, 간절한 기도와 정성들이 뭉쳐 만든 결과요, 기적이다. 감동을 안고 반석골 묘지로 올랐다. 으슥했던 순례길은 수월하게 갈 수 있도록 밝고 깨끗한 데크길로 정비되어 있고, 14처 작품은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기 좋게 제작되어 있었다. 베드로 선조와 진한 감회를 나누었다.

“당신의 고매한 영성을 현양하는 기념관이 설립되어 매우 기쁘시죠, 정말 축하드려요. 북당에서 시작된 구원의 빛은, 세세대대로 밤하늘에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믿음의 새벽문을 열어주신 희생적인 용기와 열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순례를 마칠 때쯤, 기념관 벽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월락재천 수상지진(月落在天 水上池盡)” 바로 검색해 보았다.

“달은 지더라도 하늘에 있고, 물이 치솟아도 연못 안에 있다.”

순교 직전에 남기신 유언 같은 말씀, 영적 유산이다.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 앞에 얄팍한 내 신앙이 부끄럽다.

‘반석의 신비’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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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남동구 무네미로 143.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 (21529)     문의  032)467-0771  ~2  

정기 운영 시간 AM 9:30 ~ PM 5:30       메일 문의 leesh_seongji@cainche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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