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소개
발자취
성지 설립 계기
이승훈베드로성지는 한국천주교회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역사적 터전이자, 신앙의 첫걸음을 딛은 이들의 삶과 정신이 깃든 소중한 성지입니다. 성지 조성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을 넘어 그 신앙과 가치를 오늘에 살리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지 조성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의미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01
한국인 최초의 영세자 탄생
1756년에 태어난 이승훈은 1783년 부친을 따라 북경에 가서 예수회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한국천주교회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는 한국인 최초의 영세 사례로 기록됩니다. 이승훈은 서학을 단순한 학문으로 접한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받아들여 조선 최초의 세례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한 성령의 이끄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02
자생적 신앙공동체의 형성
이승훈 베드로의 귀국 이후, 그를 중심으로 이벽, 정약용 등 실학자들과의 깊이 있는 사상적 교류가 이어졌고, 이를 통해 조선에서 자생적으로 천주교 신자 공동체가 조직되었습니다. 이는 외부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고 신앙을 받아들인 유일한 사례로, 세계 교회사에서도 매우 드문 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03
박해와 순교의 역사적 증거
이승훈 베드로에 의해 시작되고 뿌리내린 천주교 신앙공동체는 도입초기부터 심한 탄압과 박해를 받았으며, 약 103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초보적인 교리수준이었음에도 고문 받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마음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바로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 가톨릭 역사에서도 유례없는 신앙의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04
서학 유입과 근대 인식의 확산
천주교와 함께 유입된 서학은 한국 사회에 사상적,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서학은 이성적 사고와 인간 중심의 사유를 도입하며, 유교 사상과 충돌하고 새로운 사고 방식을 촉진했습니다. 또한 서양의 과학과 기술은 조선 사회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천주교의 평등과 자유의 가르침은 정치적, 사회적 개혁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서학은 한국 문학과 교육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쳤고, 근대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05
문화유산으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계승
인천시 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된 이 지역은 천주교 신앙의 역사성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승훈베드로성지는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라 순교자들의 정신과 신앙의 뿌리를 오늘의 삶 속에서 되새기고 실천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신앙의 공간입니다. 여러분의 방문이 그 깊은 의미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