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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소개

이승훈 베드로

01. 하느님의 종

“하느님의 종 이승훈 베드로“는 한국천주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그가 걸었던 삶의 길은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앙과 헌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종”은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첫 단계에 부여되는 경칭으로, 해당 인물이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며 믿음의 모범을 보였음을 교회가 인정하고 공식적인 시복 조사 절차를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승훈 베드로는 조선 후기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자발적으로 한국천주교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최초의 평신도였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그는 믿음을 굳건히 지켰고 그 삶 전체가 하느님께 봉헌된 여정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많은 이에게 신앙의 빛을 전한 삶이었기에 2016년 10월 교황청 시성성으로부터 '장애없음' 교령(Prot N. 3087-4/16)을 접수하여 공식적인 시복 대상자로 인정받았으며, 이로써 “하느님의 종”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종”의 묘소는 성지로 조성할 수 있으며, 이는 신자들에게 그의 신앙을 기리고 본받을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자리 잡게 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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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승훈 베드로의 신앙여정

이승훈 베드로는 자발적으로 신앙공동체의 문을 연, 한국천주교회의 첫 걸음을 내디딘 믿음의 선구자입니다. 외부의 영향이 아닌, 스스로 진리를 찾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그의 여정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을 전파하며 공동체를 이끌었던 그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고백을 넘어, 한국천주교회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내며 순교에 이른 그의 용기는 하늘의 소망을 붙든 믿음의 결정체였습니다.

​​

그의 걸음을 따라가며 우리는 신앙의 본질과 마주합니다. 각자의 삶 속에서 신앙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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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이승훈 베드로의 공헌

이승훈 베드로

​이승훈 베드로의 전교 활동과 순교

1785

을사추조적발사건

-잠시 신앙공동체 떠남 : 이는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이듬해 가성직제도 실시

1792

공자위패 불배사건

-1791년 평택현감 재직시 향교 문묘에 배례하지 않았다는 것을 평택 유생들이 뒤늦게 문제삼아 상소함
​-유생들은 무고죄로 엄한 처벌을 받음

1787

정미반회사건

-반촌에서 천주교 서적 발각
-​서학서 색출과 소각령

1795

을묘실표사건

-주문모 신부님 검거 실패로 을묘박해 발생 ▶ 3명 순교
-이승훈도 체포되어 예산 유배
-1796년 귀양에서 후, 정치 활동에서 멀어짐

1784
-
1790

북경교회와 서신 접촉

-1784 첫 서신 : 귀국중 압수
-1787 둘째 서신 : 가성직제도 문의
         -구베아주교 답신 : 가성직제도 부정, 제사 금지
-1790 셋째 서신 : 성직자 파견 요청

1801

신유박해

-이승훈 순교
-​'월락재천 수상지진'

1791

진산 사건

-제사 문제로 윤지충, 권상현 순교
-이승훈 고발, 신문 후 석방
-제사 지내는 것은 조상신을 섬기는게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공경일 뿐
-​이 사건으로 평택현감에서 삭탈관직되고 사대부 신자 다수가 교회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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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운영 시간 AM 9:30 ~ PM 5:30       메일 문의 leesh_seongji@cainche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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